전자나룻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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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심야 한정 홈쇼핑

엄마에게 필요한 약

솔잎사이다 2016. 2. 8. 16:38

 "엄마, 미안해."

 어머니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 목으로 힘겹게 신음을 내며 어깻죽지만 남은 팔을 부르르 떤다.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죽을 떠먹여 주려다 그만 죽을 그릇째로 어머니의 가슴팍에 전부 쏟아버린 탓이다. 

 동생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먹이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걸레로 어머니의 웃옷을 닦아드렸다. 

 "내가 할 테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그치만…. 착한 일을 해야 산타할아버지가…."

 그러고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텔레비전만 보던 애가 오늘따라 유달리 부산스럽게 구는 게 이해가 갔다.

 "그냥 가만히 있어. 그게 착한 거야."

 "그치만…."

 "넌 원래 착하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꼭 주실 거야. 알았지?"

 동생은 마지못해 간다는 듯 우물쭈물 대다 느릿느릿 거실로 움직였다. 어머니는 죽을 닦고 옷을 갈아입혀 드리자 그제야 좀 살 것 같다는 듯 표정을 푸셨다.

 염색 공장에서 일하시던 부모님은 작년에 그만 공장 보일러 폭발에 휩쓸리셨다. 아버지는 상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어머니는 팔 하나와 다리 두 쪽을 잃어버렸다. 큰 사고였지만, 그 일은 뉴스에 1분 정도 소개된 것이 끝이었다. 배상이라고 해봐야 입원비 1년 치가 전부였다. 폭발이 사장까지 집어삼킨 탓이다. 그나마도 받은 것이 어떻게 보면 기적일 것이다. 결국,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걸레를 빨며 한숨을 쉬고 있는 그때, 벌컥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왔다."

 화들짝 놀란 동생과 나는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다. 아버지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 불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타났다!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무얼 하다 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무척 말끔한 모습이었다. 1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두고 남자 화장품 냄새나, 값비싼 상표의 양복이나, 윤이 나는 구두 같은 것부터 눈에 담는 내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셋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리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로 갔다. 처참한 모습의 어머니를 본 아버지는,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내가 잘못했소. 내가 잘못했소."

 아버지는 한참을 그러다 벌떡 고개를 들어 세상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걱정 마라! 이 애비는 사업에 성공했다! 어머니도 고치고 우리 가족 남부럽지 않게 한 번 살아보자꾸나!"

 그리고 나와 동생은 언제 울었느냐는 듯 미소가 만발하고 어머니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입술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생각을 털어내려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요새 이런 망상을 자주 한다. 그건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이다.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것은 금연을 결심했던 사람이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찾는 담배 같은 것이어서, 도저히 끊으려야 끊을 수 없었다.

 "오빠, 오빠. 이거 봐. 이것 좀 봐."

 죽을 다시 끓이려는데, 동생이 황급히 나를 불렀다. 부르기에 가봤더니 텔레비전 홈쇼핑이었다.

 "뭔가 갖고 싶은 거라도 있니?"

 동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봐."

 비쩍 마른 여자가 알약을 물에 개어 마시고는 승용차를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맨손으로 자동차를 연거푸 내리쳐 부숴버렸다. 날카로운 절단면에 손을 베여 피가 나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산타 복장을 한 청년이 여자의 피 묻은 손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이후의 생긴 상처까지 낫게 해주진 않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자는 다시 약을 녹여 마셨다. 청년은 여자의 손에 물을 부어주었다. 피가 완전히 씻겨지진 않았지만, 상처가 아물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자, 보세요. 이렇게 한 잔 다시 마셔주면 말끔하게 낫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효능!"

 양다리가 없는 노인이 깡마른 팔로 힘겹게 휠체어의 바퀴를 굴려 청년에게로 가고 있었다. 청년은 약을 녹인 물을 건넸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 노인은 곧바로 물잔을 떨리는 손으로 소중하게 쥐고,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마셨다. 

 청년이 손가락으로 수를 센다.

 "자, 하나. 둘. 셋!"

 그리고 노인의 다리가 쑥 자라났다. 노인은 알 수 없는 말로 뭐라고 외치면서 솜털 하나 없이 깨끗한 새 다리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말도 안 돼…."

 산타 복장을 입은 청년이 입을 바쁘게 놀린다.

 "보면서 믿기지 않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직접 주문해보시면 이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두 상자에 단돈 삼백구십 구만 구천 원에 이 모든 것을 누리실 수 있습니다! 지금 주문하시면 특가 행사로 한 상자 더 드립니다!"

 "저거 사자. 응?"

 만약 텔레비전에 나온 저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사백만 원 정도야 아까운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사기 같았다. 문의해보기 위해 전화번호를 찾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상품명도 없고, 자막이나 화면을 꾸미는 것도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홈쇼핑 로고도 없다. 어쩌면 성탄절 특집 예능 방송인지도 모른다. 

 "미정아. 그러니까 저건…."

 나는 저것이 그저 가짜라는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동생의 눈을 보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동생은 저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땐 그냥 둘러대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알잖아. 우리 돈 없는 거."

 침묵. 동생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보챘다.

 "크리스마스 선물 안 줘도 되니까 저거 사줘. 응?"

 한숨. 나는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저 장난을 계획한 사람을 향한 미움이 끓어올랐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촌스러운 나팔 소리가 들렸다. 쇼호스트가 종을 흔들면서 방정맞게 굴었다.

 "첫 출시 기념행사로 이 제품의 이름을 지어주시는 분께는 이 제품 한 상자를 무료. 무료로 드립니다!"

 동생의 목이 홱 돌았다. 무척 들뜬 목소리로 내게 다시 보챘다.

 "오빠. 저거 해보자! 오빠는 분명 잘할 거야! 오빤 이름 잘 짓잖아!"

 텔레비전이 이렇게 저주스러운 적은 없었다. 왜 자꾸 미정이를 충동질하는 건가!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일어섰다. 어떻게 달래주고 싶었지만, 마땅히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계속 이러다간 나도 모르게 빽 화낼 것만 같았다.

 "저거 엄마에게 꼭 필요한 약이잖아! 어떻게 좀 해 봐!"

 다시 한숨.

 "일단 자. 내일 얘기 하자."

 텔레비전부터 끄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리모콘을 집은 순간 팡파레가 울렸다. 

 "김미정 양이 이 제품에 엄마에게 꼭 필요한 약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상품 배송 지금 바로 해드리겠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와 미정이는 그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상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분명 상자가 있었다. '엄마에게 필요한 약'이라는 글씨가 예쁘게 인쇄된 골판지 상자였다. 텔레비전을 보니 아까 그 쇼호스트는 온데간데없고 보험 광고뿐이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생각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동안 동생은 어느새 상자를 열고 있었다. 

 개별 포장되어 상자 속에 가지런히 놓인 약. 틈 하나 없이 꼼꼼하게 놓인 곽들은 어림잡아 사천 개는 되는 것 같았다. 곽엔 설명서와 알약 열 개가 들어있었다. 이만한 양이면 온 세상을 다 낫게하고도 남을 것이다. 

 "오빠! 빨리!"

 어느새 동생은 물을 떠두곤 어머니 옆에 앉아 바닥을 탁탁 쳤다. 나는 더 생각도 않고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물에 약을 녹여 어머니 입에 조금씩 흘려주었다.

 동생이 들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하나! 둘! 셋!"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덮은 화상이 사라지고, 천천히 팔과 다리가 돋아났다. 그리고 빼빼 말랐던 몸은 잘 먹은 사람처럼 살이 찌고, 창백했던 뺨엔 붉은 혈기가 돌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확인하지도 않고 바로 일어나 우리를 안았다. 그리고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리를 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해서 우리의 등을 재차 쓰다듬었다.

 "엄마!"

 미정이도 나도 울었다. 계속 울었다. 그간 못 다한 말과 감정을 눈물로 대신했다.

 "아들. 고생 많았어. 엄마가 미안해."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미정이도 고생 많았어. 많이 힘들었지?"

 미정이는 엄마 품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울다가 잠이 들었다. 

 축축하고도 따뜻한 밤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곧바로 외출했다. 사실 나는 받지 못한 배상 문제 따위를 이제 해결해야 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시간이 많으니 괜찮다며 우선 가족끼리 놀러 가자고 하셨다. 결국, 나도 머릿속의 계산기를 잠시 꺼두고 이렇게 나왔다. 

 내 아르바이트는 오늘 쉬었다. 사장님께 뭐라 말할지 오래 고민하다 그냥 하루 쉬겠다고 했더니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미정이는 오늘 학교 안 가?"

 "방학이라서 괜찮아요."

 어머니는 방긋 웃고는 미정이를 등에 업었다. 처음엔 창피하다고 거부하던 미정이는 어느새 등에 업혀서 어린아이처럼-사실 어린아이 맞지만, 어리광을 부렸다.

 "그런데 정말 좋은 약이구나. 힘도 펄펄 나는 게 정말 굉장하구나. 누가 만든 거니?"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나중에 알아보려고요." 

 "꼭 찾아가자. 보답해야지."

 "당연히 그래야죠."

 우리 가족은 오래간만에 근사한 외출을 즐겼다. 미정이 책가방도 멋진 것으로 하나 샀고, 저녁거리도 잔뜩 샀고, 오는 길에 돈가스도 먹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하나 샀다. 나는 이 순간에 미정이가 정말 고마웠다. 미정이는 정말 활기차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미정이는 어머니에게 나 자신도 몰랐던 일상 속의 즐거운 얘기를 끊임없이 들려주었다. 이 외출이 즐거운 외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정이의 공이라고 봐야 한다. 기특한 마음에 미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만약 나만 있었다면 우울한 하루가 되었을 테니까.

 어머니가 미정이에게 껌을 먹여주었다.

 "정말, 이렇게 행복한 하루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네!"

 미정이가 기쁜 소리로 답하고, 우리 가족은 웃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납골당이었다. 미정이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곽째로 함에 넣었다. 

 "아빠. 이거 먹으니까, 우리 엄마도 나았다? 아빠도 이거 먹고 빨리 나아야 해. 알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의 말이지만, 미정이는 터지려는 울음을 끝내 참아내었다.

 나도 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버지. 약속드릴게요. 제가 아버지 몫까지, 미정이랑 어머니 잘 보살필게요. 끝까지 남아서, 끝까지 챙길게요. 전 자신 있어요. 여태 잘 해왔으니까, 잘 할 거예요."

 그리고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 기도드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옆집 할아버지가 거리를 쓸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 비를 멈췄다.

 "아, 아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멀쩡한 어머니를 보고 놀란 할아버지에게 미정이가 말했다.

 "어제 나았어요. 엄마를 하나님이 살려주셨나 봐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 아버지. 기도를 들어주셔서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기도를 계속하는 주름진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목사님 또한 감사드립니다. 기도 하는 법을 알려주신 덕입니다. 함께 기도해주신 덕분입니다. 축원해주신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정말 그 덕인 것 같네요."

 그리고 대강 안부 인사를 나누고 들어갔다. 이날은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성탄절이었다.

 다음 날.

 일을 끝마치고 집에 오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미정이는 집에 항상 있을 터였다. 어머니도 오늘은 나가지 않았을 텐데. 이상했다. 딱히 갈 곳도 없을 텐데 말이다. 만약 어딘가 갈 곳이 있었다면 내게 문자라도 보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짐작 가는 곳도 없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정이는 바로 받았다.

 "지금 어디야?"

 "교회. 오빠, 빨리 와."

 내가 알기로 이 근방에 교회는 한 군데뿐이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곧장 달려갔다. 내가 갔을 땐 예배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예배는 보통 예배와는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강단 위엔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말을 잃었다. 어머니의 팔과 다리는 없고, 온몸엔 화상이 가득한 모습. 사고 직후의 그 모습이었다.

 옆엔 목사가 물 한 잔을 들고 서 있었다. 목사는 마이크도 없이 교회 안에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기도했다. 그리고 그 물을 어머니에게 먹였다. 그러자 어머니에게서 팔과 다리가 돋아나고 화상도 모두 사라졌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입니다!"

 "아멘!"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환희의 탄성을 내질렀다. 사람들은 두 손을 굳게 잡고 기도했다. 다시는 태양도 그 빛도 보지 않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외국의 말보다 낯선 말을 가쁜 숨으로 외었다. 그 열기는 무정한 실내기의 온풍보다도 뜨거웠다.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미정이랑 어머니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어머니!"

 내가 외치자 어머니는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내 시선을 회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목사가 외쳤다.

 "아들이 왔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된 가정의 아들이 왔습니다!" 

 목사가 내게 오라고 손짓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기대와 기쁨에 부푼 사람들의 눈엔 나 따위를 개미처럼 옴츠러들게 하는 강대한 힘이 있었다. 강단에 오르자 목사가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리고 목사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불운한 사고로 우리의 아들이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수족을 잃고 매일 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제 아버지의 은혜가 이 가정에도 임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이 다시 살았습니다. 이제 영원토록 건강할 것입니다. 나아가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아들도 이제 학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앞으로도 우리의 아들이 평생토록 행복할 수 있게, 그에게도 임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아멘!"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이 사단장 앞의 병사들처럼 큰 목소리로 외쳤다. 피를 팽팽 돌게 하는 원시적이고도 강렬한 외침! 너무나 어지러워서 그만 쓰러질 것 같았다. 

 목사는 축도를 한 번 더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목사가 나가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옷자락만이라도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 모습을 보고 목사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앞에 앉아있던 미정이는 쪼르르 달려와 내게 안겼다. 나는 말 없이 꼭 안아 등을 토닥여주었다. 

 젊은 남자가 와서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서 잠자코 기다려." 

 우리 가족은 목사의 사택에서 기다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미정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묻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미정이가 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나서야 목사가 왔다. 

 "이상 무!"

 젊은 남자는 목사에게 군인처럼 경례하고 자리를 떠났다. 목사가 쇼파에 앉자 어머니는 미정이를 쓰다듬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네가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착하게 쇼파에 마주 앉았다. 

 "그래, 본론부터 얘기하마."

 "무슨 일인지 설명부터 해주면 안 되나요?"

 목사는 미소 지었다.

 "젊은 사람이 뭐 그리 성미가 급해? 그래, 알았다. 어떻게 된 거냐면, 너희 가족은 이제 우리 사업 파트너야."

 "사업이요?"

 "그래. 사업."

 내 미간이 의문으로 접히자 목사는 뭘 그러느냐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봤지? 너희 어머니랑 나." 

 "어머니를 왜 다시 그렇게 만들어버린 겁니까?" 

 목사는 쏘는 듯한 내 말에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러다 이해했는지 피식 웃었다.

 "뭐야, 여태 설명서도 안 읽은 거야?"

 "설명서라뇨?"

 목사는 양복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그 약 있지? 먹어봐서도 알지만, 정말 끝내주는 약이다. 암이건 뭐건 상관없다. 먹는 사람이 누구건 숨만 붙어있으면, 모든 병을 없애버려. 그리고 몸도 젊을 때만큼 튼튼해져. 힘도 오십 배는 세지고. 그건 일반인이 먹어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약의 효력은 딱 24시간뿐이야. 약발 다 떨어지면 몸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원래 상태가 어쨌건 간에, 약은 봐주지 않아. 그뿐이다. 설마 내가 네 어머니를 두들겨 패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 줄 알았어?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제야 아까부터 치솟던 화가 가라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

 "아무튼, 자네도 우리 사업 파트너가 될 테니까 솔직하게 다 털어놓으마. 내가 하려는 건 아까 그 쇼야. 너도 아까 봤지? 사람들 껌뻑 죽는 거. 너도 잘 알다시피, 교회는 다른 종교보다도 치료의 권능을 중시해. 애초에 예수가 유대 땅에서 자기 추종자들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뭔데. 사람들 병 낫게 해줘서 따라가고 섬긴 거 아냐. 그 양반 개똥철학은 애초에 덤이었던 거라고."  

 목사는 무언가 생각나는지 입술을 씰룩였다.

 "그리고 성도들이 세계 각지의 예수교 성지에 찾아가는 이유는 모두 그 병 때문이지. 현대 의학이 발달하긴 했지만, 지금도 팔다리 같은 건 어쩌지 못하잖아. 다른 병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바이러스 같은 것은 의학이 발달하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고 위협적으로 진화하기도 하지."

 주먹을 불끈 쥔 목사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병마의 사투에 종지부를 찍어주는 거지. 또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치료의 성지가 되어 부흥할 것이다. 우리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싸이나 김연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위선양을 위해 일한 일등 공신으로서, 최고의 영웅이 받아야 할 마땅한 명예와 부를 누리는 거지. 물론, 너희 가족도 가난하고 비참한 삶과는 작별이다. 어떠냐? 내 계획이?"

 대강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사람들은 그 약의 효과를 목사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이라고 믿을 테고, 헌금 같은 것은 당연히 잔뜩 낼 것이다. 하지만….

 "사기잖아요."

 목사는 픽 웃었다.

 "단순히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한 거다."

 "들통 날 거에요."

 목사는 선언하듯 말했다.

 "마음속에 의심 한 점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 시절의 자기 검열 같은 것도 다 그런 데서 나왔던 거야."

 그 시절이 생각나는지 목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목사는 일어나서 재떨이를 가져왔다.

 "돈은 걱정하지 마라. 처음엔 매달 사백만 원씩 주마. 일 년 뒤엔 매일 사백만 원씩 줄 수 있을 거다."

 "전 그래도, 어머니가 매일 불편한 몸이 돼야 한다는 게 싫어요."

 목사는 담뱃갑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정중히 사양했다.

 "네 어미랑 합의 봤다."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전 싫어요."

 목사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아. 질문 하나만 하자. 네가 그 약으로 그런 큰돈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넌 돈 버는 법을 몰라. 이런 약을 이용할 줄도 모르고. 고작해야 어머니에게 매일 하나씩 먹이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게 전부 아니냐?"

 "네. 그게 전부에요."

 나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게 제가 제일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목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약은 더 구하면 되는데 무슨 소리야?"

 순간 놀라 목사를 보았다.

 "어떻게요?"

 목사는 무슨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너 거래처 텄다며."

 "네?"

 옅은 연기가 거실에 천천히 퍼졌다. 미정이가 걱정되었지만,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동생한테 들었다. 이거 네가 받아온 거라며? 가격이 사백만 원이었지? 상관없어. 그 정도는 내가 내줄게. 계속 나 대신 사오기만 해."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심야에 방영한 홈쇼핑과 약 상자가 갑자기 생긴 것까지 모두.

 얘기를 끝까지 들은 목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그렇구먼. 전도사. 들어 와."

 아까 그 젊은 남자가 내 옆에 섰다.

 "그런데 이 약. 설명서랑 곽 잘 살펴봤는데, 이런 약에 있는 기본적인 정보가 없더라 이 말이야. 상호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없더라고.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말이야."

 목사는 적당한 말을 찾는지 잠시 웅얼거렸다.

 "이런 경우는 말이야. 뭔가, 그래. 뒤가 구린 걸 빼 오는 것 말곤 없지. 설마, 내가 방금 네 거짓말로 속을 줄 알았던 거야?"

 나는 이 사람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거짓말이라뇨? 정말이에요."

 목사는 잠깐 생각하다 혼자서 무언가 결론지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뭐, 거래처가 좀 특별하다던가, 무지막지한 놈이라는 거라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더는 안 물을게. 대충 돈만 확실히 쥐여주면 물건도 확실히 주는 놈 같은데. 그냥 사오기만 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미친 소리 같지만 방금 말한 게 전부 사실이에요. 저도 마음대로 사올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내게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그냥 이분 말씀대로 하자. 응?"

 "어머니는 또 무슨 소리에요!"

 목사는 쇼파 뒤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냈다.

 "말 안 하겠다. 이거지?"

 그리고 어머니에게 힘껏 휘둘렀다. 어머니는 종아리가 꺾인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목사에게 주먹을 내지르자, 목사는 내 팔뚝을 잡고 힘껏 쥐었다. 내 근육과 신경이 찢어지고 뼈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명을 참으려 본능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잇몸이 찢어질 정도로 세게.

 "에미한테 약 반만 먹이길 잘했지. 아, 이거 아냐? 이 약, 반만 먹이면 힘은 안 나게 되더라."

 목사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새꺄.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거 아직도 모르겠냐? 아까 그 제의를 생각해 봐라. 세상천지에 나처럼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어디까지나 나니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사실 난 너희 가족 굳이 쓸 필요 없어. 그냥 그때그때 병신 하나씩 구해서 쑈하는 거 일도 아니야. 약도 이미 내 손에 있겠다. 그냥 너희 무시해도 난 손해 볼 것 하나 없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목사는 입을 막고 소리 죽여 웃었다.

 "경찰? 신고? 해 봐. 아니, 신고한다고 쳐도, 지금 이 일을 경찰 앞에서 말할 자신이나 있냐?"

 목사는 야구 방망이로 내 머리를 툭툭 쳤다.

 "약 얘기는 진짜 어떻게 할 거냐? 약이 어디서 났건 간에, 우리 말곤 그 약 존재조차도 모르잖아. 존재하지 않는 약을 어떻게 증명할 거냐? 결국 경찰에겐 네 말이 전부 거짓말이 될 거다. 그리고 내가 보여줬던 그 쇼 말이냐? 사지육신 돋아난 거? 그건 너희 가족이 믿음을 저버려서 다시 그렇게 됐다고 내가 한마디만 하면 끝나. 아, 조사? 어쨌건 사람들은 보긴 봤을 테고, 누군가 찍어서 올리긴 했겠지. 그런데 그거 아냐? 방송이건 뭐건 조사할 때쯤이면 그건 그냥 사이비 목사의 쇼로 끝난다고. 사이비의 쇼라고 결론지으면 그 승냥이들도 내게서 손 뗄 거다. 그래도 직접 본 성도들은 계속 나를 추종할 테지만."

 목사는 내 뺨에 담배꽁초를 비벼껐다. 팔의 통증이 심해서인지, 그것은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냐? 할 거야, 안 할 거야?"

 나는 팔의 통증을 꾹 참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우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아, 알았어. 할게. 하면 되잖아."

 "말이 짧다."

 "할게요. 합니다. 하겠습니다."

 목사는 약을 반 쪼개어 물에 개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머지 반은 전도사가 어머니에게 먹였다. 약의 효과는 좋았다. 상처는 모두 아물었다. 통증도 모두 가라앉았다. 이제 머리를 다시 굴려보자. 어떻게 해야 내가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 아, 먼저 약 하나를 더 구해서.

 목사가 뭔가 잊을 뻔했다는 듯 덧붙였다.

 "말해두겠는데, 네가 약 구해서, 그걸로 우릴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따윈 하지도 마라. 그것도 다 대비해뒀으니까. 뭐, 그건 말 안 해도 알지?"

 목사의 시선이 자는 미정이를 훑었다. 만약 시선에 촉감이 있다면 그것은 침에 함빡 젖은 혀의 촉감일 것이다.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다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고야 말았다. 

 나는 일어나 목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더 구해오겠습니다."

 목사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바로 그 자세야.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다음 날 나는 곧장 약을 구하러 갔다. 도착한 곳은 납골당이었다.

 아버지의 유골함에서 약 한 곽을 꺼냈다. 약은 한 곽에 열 개가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니, 남는다.

 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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