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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과가 나를 먹었다

솔잎사이다 2016. 2. 28. 19:50

 상쾌하고도 즐거운 휴일 아침. 하지만 나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반찬이 형편없는 탓도 아니고, 집이 나보다 숨을 잘 쉬는 탓에 생긴 감기 탓도 아니고, 잠이 덜 깨어 입맛이 없는 탓도 아니다. 반찬 모두가 비명을 질러대기 때문이다.

 장조림과 배추김치, 그리고 고슬고슬한 밥이 전부인 간소한 밥상. 아까의 비명은 그치고 밥상은 고요했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밥알을 건드리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얼굴 없는 밥알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비명에, 결국 나는 밥상을 신문지로 대강 덮어두었다. 그래도 비명은 여전히 귓속을 파고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아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고향 집에 내려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갈비를 구워주셨는데, 옆집에서 송아지가 어찌나 구슬프게 우는지 그만 몇 점 먹지도 못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욱 괴로웠다. 산 송아지를 직접 불판에 올려 그 자리에서 살점을 뜯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나를 더욱 미치게 하는 것은 식욕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나는 저 녀석들의 비명에 괴로워하는 동시에 저 녀석들을 보며 군침을 흘린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나갔다. 어제 저녁을 거르지만 않았어도 좀 더 잘 견딜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밖에서도 비명은 여전했다. 기사 식당이건, 노점이건, 편의점이건!

 음식이 있는 곳에 비명이 있었다. 편의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반죽이 달군 철에 구워지는 소리, 이로 면을 끊는 소리, 칼날에 갈기갈기 찢어지는 과일들. 나는 거기서 몇 발자국 더 걷지 못하고 위액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응급차에 실리고 문이 닫혔을 때, 비로소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오면서 수액을 꽂았는데,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못 먹은 밥과 병원비 따위를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은 사람들이 걷고 떠드는 것 외엔 정말 조용했다. 무엇보다도 그 끔찍한 비명이 없었다. 의사는 대강 맥을 짚고 피를 뽑았다. 의사는 나를 보고 물었다. 

 "멀쩡해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선생님. 저는 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의사는 당혹스러워했다. 

 "마침 신경정신과 스케줄이 비어있는데, 바로 상담받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걸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기왕 온 김에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았다. 빌어먹을 의사 녀석은 내가 아무리 말을 해주어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나 심각한데 단순한 신경증 정도로 생각하다니! 괜한 돈만 든 것 같았다.  

 약을 먹기 위해 손에 털었다. 그런데 약이 참 이상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었다. 진료를 다시 받을까 하다가 그냥 먹고 집에 가기로 했다. 사실 지금 다시 돌아가기도 뭣하다.

 "아야!"

 순간 나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그만 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손가죽 틈새에서 피가 천천히 새어 방울졌다. 약이 떨어진 곳 옆에선 개미들이 죽은 개구리의 살을 자르고 있었다. 모두 큼지막하게 한 덩이씩 썰어 들고 만족스러운 듯 줄지어 집으로 돌아간다. 

 한참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다, 약을 주워 핏방울에 얹었다. 약은 피를 천천히 머금더니 다시 내 살을 씹기 시작했다. 주저하지 않고 그냥 삼켜버렸다. 배가 아프게 되진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집에 돌아왔을 땐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말라버린 밥알과 김치를 모두 찔러봐도 반응이 없었다. 장조림을 한 점 집어 씹었다. 

 맛있었다. 무척. 언제나처럼 맛있었다. 심지어 비명도 없었다! 식은 밥 대신에 새 밥을 먹기 위해 밥을 푸는데, 그중 몇 알이 발등에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식사할 생각에 무척 기뻐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엉덩이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 밑을 보았을 때야 알았다. 밥알은 내 발을 파먹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돌아보니, 밥솥 앞과 밥상까지 길고 짙은 핏자국이 있었다. 밥알을 떼버리고 붕대를 감을까 했는데, 털어 내려 하니 개구리가 생각났다. 

 아까 받은 약을 전부 입에 털어 넣고 펜을 들어 종이에 천천히 적었다.

 '만약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은 내 방법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답이지, 당신을 위한 답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옷을 전부 벗어 던지고 밥알을 온몸에 발랐다. 몸 곳곳에 엉겨 붙은 밥알들이 피에 붉게 물들어 갔다. 참아도 어쩔 수 없는 고통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피와 밥알이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의식이 흐려져 가는 와중에도. 

 개구리는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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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장면이랑 편의점 장면 잘라버렸는데, 이거 잘한 일인지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