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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나룻배
"자네, 먼지가 묻었군." 나는 말 없이 옷을 털었다. 노인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내 업무 수첩을 읽기 시작했다. 읽는 중간중간 펜으로 수첩을 긋는다. 지금은 밑줄을 그어 주고 있군.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한 선이지. 손이 한 군데 멈춰서 움직인다. 이건 우아한 싸인을 해주는 것이다. 노인은 수첩에 종이를 끼워 내게 주었다. "이제 시작하게. 현장에 5분 늦게 도착하는 거 잊지 말고." "예." 그러고선 노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게 눈길을 더 주지 않고 무언가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번화가로 나왔다. 쪽지에 적힌 숫자는 1044. 장소는 카페 앞 신호등. 지금이 10시 37분이니까, 좀 빨리 온 셈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약속 장소에서 떨어져 있다가, 5분 지나서 도착해 일을 하면 된다...
배가 고파졌다. 길을 걷다 오토바이를 보자 허기가 돌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왜 나는 저 오토바이가 그렇게 맛있어 보일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도. 내 혀는 저걸 늘 먹어왔다는 듯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 배기구에 맺힌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시동을 끈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 씹을 때의 감촉이 혀에 생생히 돋아난다. 먼저 바퀴를 씹는다. 오토바이를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엔진부터 먹으려고 하겠지만, 그건 틀렸다. 오토바이 엔진이 가장 맛있을 거라는 논리는 순대를 먹을 때 염통을 먹었던 기억만 떠올린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돼지는 족발이, 닭은 다리가, 소는 사태가 제일 맛있는 부위다. 그러므로 오토바이또한 바퀴쪽이 제일 맛있는 것이다. 맛있는 부위부터 먹는 것이 식사의 정석이..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돈다. 그것은 밤에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갑자기 채널이 바뀌고, 일반적인 홈쇼핑에선 절대 팔지 않는 물건을 판다는 것이었다.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마법이라도 깃든 것처럼 좋은 효과가 있지만, 간혹 부작용이 심한 것이 있어 만약 그 홈쇼핑을 보게 된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한다. 주문은 전화 걸 필요도 없이 바로 사겠다는 말만 하면 된다고 한다. 돈은 그 자리에서 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될 때를 마치 계시가 내리는 것처럼 스스로 알게 되며, 그때 돈을 내지 않으면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고 한다. * * * * * * * * * * * "텔레비전 진짜 재미없다." "내 말이." 일 초마다 바뀌던 채널이 멈췄다. 멈춘 채널은 홈쇼..
프로펠러처럼 빙빙 도는 전등 깃과 꿈의 잔영이 잠에서 깬 나를 반겨주었다. 흰 염료를 온몸에 바른 구릿빛 피부의 원주민들이 나를 붙잡고 헬기로 공수해온 소금을 부대째로 먹이는 꿈이었다. 침을 꼴깍 삼켰다. 바싹 마른 목은 미약한 동작에도 아파한다.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보았다. 1:07(일). 이 정도 시간이라면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자도 될 것이다. 물을 안 마시고 자니 그런 꿈을 다 꾸는구나 하며 꿈을 되새겨보았다. 물을 마시고 거실을 보니 여느 때처럼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나 여동생이 보다가 끄지도 않고 그냥 들어가 자는 모양이었다. 버튼에 얹혀진 손가락이 버튼을 누르다 말고 멈췄다. 화면에선 쇼 호스트가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누가 홈쇼핑 채널을 틀어놓은 거지?' ..
"빰빠라빰! 빰! 빰! 기상!" 창문으로 비치는 햇빛도, 옆집 아기의 울음소리도 깨우지 못한 나를 휴대전화의 알람 소리가 깨운다. 알람을 일곱시 반에 울리도록 맞추어뒀으니 지금은 일곱시 반일 것이다. 생각은 거기에 그치고, 손은 척수반사적으로 휴대전화에 뻗어나가 알람을 꺼버린다. 그런 뒤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다시 잘 바에야 뭐하러 알람을 맞췄을까. 누운 채로 흘긋 본 벽에는, 나의 새해 다짐이 크지만 멋없는 글씨로 쓴 '나의 목표'가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의욕이 충만했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저걸 쓸 때만큼은 충만했다. 제대를 하고 일주일간 놀았을 때야, 죄스런 마음은 없었다. 부모님도, 나도, 그것을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포상이라고 여겼다. 스스로에게 말했었다. 딱 이..
새하얀 입김. 차가운 바람. 햇빛을 받아 시리게 빛나는 설원. 간밤의 눈에 덮인 마을은 혼롓날 드레스를 차려입은 신부만큼이나 희고 깨끗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옷에 맺힌 서리를 털어내는 경비병들과 솥에 얼음을 끓이는 아낙네들. 그리고 사냥감을 상패처럼 자랑스러이 메고 오는 우람한 사내들이 제 나름의 방법으로 발레스의 아침을 밝히고 있었다. 그 아침의 테두리 밖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손님의 행색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군데군데 해져 바람이 새는 것이 보이는 로브도 그렇지만, 장갑은 얼마나 썼는지 너덜너덜 해졌고, 가죽 장화엔 언제 붙었는지 모를 진흙이 굳은 데다, 허리춤에 차인 검은 손질이 되지 않아 빛을 잃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구석이 있다면 막 씻은 듯 깨끗한 얼굴과 손의 피부와 등에 멘 멋..
자르딘 동쪽엔 시들지 않는 풀밭이 있다항상 웃고 있는 꽃과항상 풀을 뜯는 순록항상 분주한 걸음을 하는 그 말고는 몇 해째 손님이 없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밟는 것을무척좋아했다 닳아빠진 목검 말고는가진 것 없는 그의 흔적도 풀을 미처 삼키지 못 하고 스러진 순록과 함께뉘여있었다 아프지 말라는 말일까풀밭에 곱게 놓인 빠알간생명력 30 포션 하나 한 걸음 더 나아가라는 말일까TV에 나오는 청춘 음료와 빼닮은스태미나 30 포션 하나 해진 내 옷이 안쓰러웠던 걸까작은 우아함을 담은투 톤 비조 드레스 나는아아나는 아아그의 발자취를 좋아했다사랑했다 순록의 원망 섞인 눈물도어느새 잊고그의 발자취만을좇았다 자르딘 동쪽엔 시들지 않는 풀밭이 있다항상 웃고 있는 꽃과항상 풀을 뜯는 순록말고는 몇 해째 손님이 없다 나는말보다..
가벼운 취기의 기쁨.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내 표정은 굳어있었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고 있다. 역시 나란 사람은 밑 빠진 독인지, 오줌보 한구석에서부터 주체 못 할 요의가 솟구쳤다. 방광은 아까 마신 술을 버리자고 배를 연방 두들긴다. 집까진 앞으로 이십 분 거리. 가까운 거리이지만, 그냥 참고 가기엔 나의 오줌보가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노래방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화장실 어딨나, 화장실. 화장실." 급한 마음에 입은 속내를 터놓는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아이의 울음보다도 솔직한 소리이리라. 다행히 들어가자마자 화장실 팻말을 단 철문이 보였다. '살았다!' 기쁜 마음으로 문고리를 돌려 당겼다. 철컹. 잠긴 문을 당겼을 때 나는 특유의 소리. 당황한 ..